하루는 파리지앵이 되어 걸어보자! 

오르세 + 시내 워킹투어

  투어 코스 

09:00 모임 장소 집결(개선문)

 

개선문부터 콩코르드광장

개선문-샹젤리제-(그랑.프티 팔레)-알렉산더 3세 다리-(앵발리드)-콩코르드 광장-지하철 12호선 탑승하여 몽마르트르로 이동

몽마르트르 집중투어

- 물랭루즈-아멜리 카페와 식료품점-고흐의 집-사랑해 벽
- 바토 라부아르-달리다(Dalida) 생가
- 물랭 드 라 갈레트
- 라 메종 로즈 -클로 몽마르트르-라팽아질
- 에릭 사티 생가-테르트르 광장-성심성당
* 대중교통으로 이동/버스 85번 탑승/퐁네프로 이동 - 퐁뇌프 다리-고서적상-예술의 다리

오르세 미술관 관람

 

18:00 에펠탑 또는 몽주약국 종료

 

상기 일정은 오르세 미술관 예약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늦게 도착하시는 경우, 투어 합류. 변경. 환불이 되지 않습니다.

계좌번호 : 신한은행 140 010 4382 36 (주)파리샘여행사

  요금안내

모객투어 요금

(모임 장소에서 시작 / 다른 분들과 함께 투어)

구분 예약확정금
(카드결제 또는 입금)
현지지불금
18세 이상/1인 요금 5만원 35유로
18세 미만/1인 요금 5만원 30유로

예약확정금 + 현지 지불금 = 총 투어비용

4인 이상 예약 시 출발 확정

가능날짜 : 투어캘린더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계좌번호 : 신한은행 140 010 4382 36 (주)파리샘여행사

  유의사항

  포함

  한국인 워킹 가이드비용

프랑스 국세청 등록 정식신고 가이드

  루브르 그룹 예약 발권료
  개인용 수신기 대여료
  부가가치세

  불포함

입장료

1. 오르세 미술관
1) 오르세 미술관투어 있을 경우 : 프랑스 공인 가이드가 직접 설명
(오르세 미술관 내부 한국인 공인가이드 설명은 현지여행사 중 파리샘 여행사만 독점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 입장료:12유로 현장 직불/18세 미만 무료/뮤지엄패스 사용 불가
- 공인 가이드비 : 40유로(공인가이드에게 현장 직불/투어 참가자 전원 해당)
* 미술관 투어시 개인 이어폰 지참을 권장합니다.
2) 오르세 미술관투어 없을 경우 : 한국어 오디오기 들으시면서 자유관람
- 입장료 : 12유로 현장 직불/18세미만 무료/뮤지엄패스 사용 가능
- 한국어 오디오기 : 5유로
2. 교통권(투어중 최소 2회 이상 탑승)
- 1일권 모빌리스(Mobilis/1~2존/7유로)
- 또는 1주일권 나비고(Navigo/1~5존/22유로+5유로 나비고 구입비)

개인 식사비 
기타 준비물 : 여권(원본). 개인용 이어폰(박물관투어 시 필수)

  워킹투어 참고사항

  가이드 시간은 09H00-18H00 기준입니다.
  눈. 비가 와도 예약하신 날짜에 투어 진행에는 변동이 없습니다.
  모임장소에 늦게 도착하시는 경우, 투어 합류. 변경. 환불이 되지 않습니다.
  현지 상황(천재지변. 공사. 파업 등)에 따라 일정과 동선은 변경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자주묻는 질문

  일정은 변경이 가능한가요?

  다른 분들과 함께 하시는 모객투어이므로 일정 변경은 어렵습니다. '단독 맞춤 워킹투어' 신청하시면 일행끼리 원하시는 일정으로 진행 가능합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진행하나요?

  비나 눈이 와도 투어 진행합니다.

  오르세 투어 시 뮤지엄패스 사용 가능한가요?

  사용 가능합니다.

  2세 아기도 투어 참여 가능할까요?

  4세 미만 어린이는 투어 참여가 불가합니다.

  투어후기

  모임장소

지하철로 찾아오실 경우 Metro 1.2.6번선 또는 RER A번선 'Charles de Gaulle Etoile'(개선문) 역 2번 출구('Sortie 2. av. de Friedland') 밖으로 나오시면 바로 앞에 보이는 신문.잡지 판매소 앞이 샘여행사 투어 모임장소입니다.
다른 교통수단으로 오실 경우 하기 지도를 참조하셔서 '45 Av. de Friedland 75008 Paris'의 주소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택시로 찾아오실 경우 기사에게 상기 주소 보여주시고, 하차 후 개선문 보시면 신문 가판대 옆에 가이드가 '샘여행사' 미팅피켓 들고 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
  파리의 센강가에 위치한 오르세 미술관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프랑스 남서부 지방을 연결하는 철도 역사로  지어져 용도 변경이 된 대표적인 미술관이다. 당시 빅토르 랄루가 설계한 이 역은 열차의 크기가 커지며 쓸모가 없어지자, 1939년 이후로 그대로 방치되었다.그 뒤, 이탈리아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의 감독 하에  실내를  변경해  오르세는 1986년에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오르세엔 프랑스 미술의 황금기인 1848년부터 1914년 사이에 제작된  걸작이 소장되어 있으며, 특히 인상주의 소장품은   세계 최고로 꼽혀 인상주의 미술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회화, 조각, 데생, 장식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시대별로, 유파별로 전시되어 있으며, 바르비종파, 사실주의, 상징주의, 나비파, 소박파, 후기 인상주의 등 서구미술의 근현대를 잇는 모든 사조의 작품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오르세는, 밀레의 '만종', '이삭줍는 여인들',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반 고흐의 '자화상', 세잔의 '생 빅투아르산', 로댕의 '청동시대' 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명작의 보고이다.

 

개선문  (L'arc de triomphe)

 개선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불리는 샹젤리제 거리 초입에 자리잡고 있으며, 에투알 개선문이라고도 한다.  1806년, 오스텔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은  프랑스군의 전승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개선문을 지으라고 명한다.  건축가 장 프랑수아 샬그랭은 로마의 개선문에 영향을 받아, 높이가 50 미터, 너비가 45 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문을 구축한다. 개선문엔 각 기둥마다 부조  형태의 조각이 장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프랑수아 뤼드가 조각한 '의용군의 출발', 일명 '라 마르세에즈'가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야심차게 기획된 이 문의  공사는 나폴레옹의 실각으로 중단되었다가 루이 필리프 왕에 이르러 재착공되어 1836년에야 완성된다. 개선문은 그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운 외관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선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조형물이다.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수많은 무명용사의 기념묘소가 있으며,  한 번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다.  해마다 대혁명기념일인 7월 14일엔 프랑스 군대가 행진을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엔 한국전에 참전해 전사한 프랑스군들의 명패도 있다.

 

콩코르드 광장 (Place de la Concorde)

샹젤리제 거리 끝자락과 튈르리 공원 옆에  위치한 콩코르드 광장은 손꼽히는 아름다운 광장이며, 프랑스 격변기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루이 15세는 자신의 기마상을 세우기 위해 광장을 구상하고, 공모전을 통해 자크 앙주 가브리엘을  선정한다. 공사는 1755년에 시작되며, 1763년, 광장 한가운데 부샤르동이 조각한 왕의 기마상이 건립된다. 이 광장은 루이 15세 광장으로 불렸다. 그 뒤, 1789년 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로베스피에르  등 수천 명이 이곳에 설치된 단두대에서 처형되며 이 광장은 피로 얼룩진다. 

광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이 달라지다가,  루이 필리프 왕은 이 광장을 화합을 뜻하는 콩코르드란 명칭을  다시 채택하고 재정비 사업을 벌인다.  1835년에 건축가 이토르프가  분수대를 두 개 설치하며, 1836년에 루이 필리프 왕은 샤를 10세 때 이집트에서 선물받은  오벨리스크를 세운다.  기원전 12세기 작품인 이 오벨리스크는 본래   룩소르 신전에 있던 것이다.  

또한 광장 모서리를 에워싼   프랑스의 8개 도시를 상징하는 조각상들은 또 다른 볼거리다.

 

몽마르트르와 성심성당 (Basilique Sacré-coeur)

몽마르트르는 평지인 파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으로, '순교자의 산'이라는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250년 무렵, 생드니 성인이 이 언덕에서 순교한 뒤에 몽마르트르 언덕은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성지였으며, 19세기 들어 전세계에서 몰려든 화가, 작가 등이 아지트를 이루어 창작열을 불태우던 예술가 마을이기도 했다. 아직도 테르트르 광장에선 예전의 활기를 맛볼 수 있다.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성심성당은 로마네스크양식과 비잔틴양식이 절충된 형식의 건축물로, 색다른 이력을 간직한 성당이다. 1871년 1월에 프로이센군과 휴전협정을 맺은 데 대한 반발로, 이 해 3월에 몽마르트르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이 언덕에 배치되었던 대포를 정부에 돌려주기를 거절하며, 그 유명한 민중봉기인 파리코뮌이 일어난다. 70일 간 지속된 이 저항은 2만명에서 3만명에 이르는 엄청난 민중학살로 끝을 맺는다. 

이후, 이 모든 혼란을 신의 징벌로 여긴 교계에선 이 자리에 성당을 건축하기를 바라며. 건축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전국적인 모금을 펼쳐 1876년에 상량식을 한다. 1914년 10월에 준공식을 할 예정이었으나 일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결국 1919년 10월에서야 하게 된다. 

흰 석회암으로 만든 이 성당은 높이가 83미터에 이르는 둥근 돔을 자랑하며, 프랑스에서 가장 큰 종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탁트인 전망은 장관이다.